한국은 앉아서 쉴 곳으로 충만한 곳이다. 의자와 계단 같은것들은 바쁘게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늘상 기다린다. 그곳은 주민센터 쓰레기 수거 딱지가 붙은 오래된 소파일 수도 있고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 안 안락한 탁자 곁일수도 있고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일수도 동네 할머니들이 모였다가 사라지는 길거리 한복판의 나무 의자일수도있다. 허무하게 동전을 삼켜버릴것 같은 커피 자판기들도 그 곁에 많다. 열에 아홉은 버튼위의 뽀얀 먼지 너머로 빨갛게 불이 들어 온 커피값이 보인다. 열에 아홉은 그렇게 무심하게 커피를 토해낸다. 조금 외진 곳에 투박하게 서있는 자판기를 보면 김기덕의 <악어>의 한 장면이 떠올라 그로테스크 해진다. 영화에서 전무송이 한강변의 커피 자판기 속에서 일을 한다. 사람들이 동전을 넣으면 기계속에서 손으로 커피를 내어주던것. 기억이 맞다면 그는 자판기를 향해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가로등만 켜진 텅빈 거리 속 수천대의 자판기 속에 사람이 들어가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 만화 <너의 이름은>에서 갑갑한 시골을 떠나고 싶은 여학생은 카페 하나 없는 삭막한 동네를 불평한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도 카페가 있잖아' 하고 친구들이 데려간 곳엔 바로 풀이 우거진 공터에 덩그러니 놓인 커피 자판기 곁이었다. 동전이 딸깍 내려가는 소리, 종이컵이 떨어지는 소리, 커피 나오는곳의 플라스틱문 닫히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것 같다. 그 길 어딘가에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도 이어폰을 껴고 앞을 보고 걸어가는 누군가의 통화 소리도 슬며시 들린다. 걷는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어디든 앉고 싶다. 난 전보다 더 길을 사랑하게 되었다. 햇살은 거침없이 구애의 손짓을 하기 시작하고 의자도 커피도 넘쳐나는 이곳을 떠날날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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