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에 도착해서 짐을 내려 놓고 처음으로 숙소를 나설 때의 기분은 짜릿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낯설기만 했던 장소였는데 해가 지면 돌아 올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잊혀지는지도 모르는 채 잊혀지는게 기억이지만 보통 그 첫날의 기분은 기억이 난다.
모든 첫 기억들은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로 남는다.
델리에 도착한 다음 날 뉴델리의 코넛 플레이스를 향하는 길에 샀던 노르스름한 편지지.
지금도 어렴풋이 여행 도중에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들과 엽서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여행 중의 내 소중한 인상이 기록된 엽서들은 누군가에게로 떠나가고 나에게는 엽서를 썼다는 기억만이 남는다.
어른들이 항상 똑같은 옛 얘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에게 남은 아름다운 기억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 아닐까.
난 내가 참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고 추억할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기록하고 싶다.
파리 도착 다음날에 들른 아랍 인스티튜트의 일층 서점에서 카이로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예쁜 수첩을 보았다.
그 수첩이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구입을 망설이다 결국은 계속해서 서점에 갈 기회를 놓쳐버리고
마지막 기회다 싶어서 사력을 다해 뛰었던 월요일. 서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파리에서 꼭 수첩을 사서 최소한 언제 어디서 뭘 했는지 정도는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날 방문한 베르사유에서 정원 설계사 앙드레 르 노트르의 띄를 두른 예쁘장한 수첩을 팔고 있었다.
파리의 여정들을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 거꾸로 적어가고 있지만 벌써부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바웃 타임>에서처럼 장롱에라도 들어가서 주먹을 쥐고 싶을 지경으로.
이 세권의 수첩 중 하나는 이번에 베르겐으로 함께 데려가기로 했다.
혹시 베르겐에서 마음에 드는 수첩을 발견하면 다음 여행의 일기를 위해 망설이지 않고 사버리겠다고도 결심했다.
나에게 바다는 산보다 훨씬 외향적이고 솔직했다.
그래서 늘상 소외당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베르겐의 바다에서 의외로 수줍은 바다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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